이탈리아 여행, 자동차로 토스카나 완전정복
이탈리아 여행,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을 강추합니다. 시비타 디 반뇨레조, 오르비에토, 피틸리아노, 사투르니아 온천, 아미아타산, 발도르차 평원, 시에나, 그리고 산 지미냐노까지. 숨막히는 풍경과 중세 소도시의 매력을 만끽하는 2박3일의 여정입니다.
이탈리아 여행 중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즌은?
토스카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녹색 초원이 펼쳐진 발도르차 평원의 밀밭 풍경입니다. 그래서 밀밭의 계절 변화에 따라 여행하기 좋은 시기가 달라지는데, 1년 중 4월 중순부터 5월 하순 약 1개월이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입니다. 2월 파종 후 3월부터 싹이 움튼 밀 새싹들은 4월부터 본격적으로 키가 자라 장관을 이루고, 밀 수확이 시작되는 6월 초부터는 황무지 풍경만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운이 좋게도 4월 말 이곳을 방문했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한 눈에 보는 전체 여정
로마에서 출발해 피렌체로 향하는 길은 기차로 1시간 30분, 자동차로 3시간 남짓이면 다다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만, 그 사이에는 로마제국과 르네상스 시기를 잇는 중세 시대의 역사가 담긴 천년의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기차 여행자들보다 조금은 느린 속도로, 산과 평원, 온천, 그리고 도시와 시골 마을들을 둘러보며 토스카나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 여정을 소개합니다.
첫번째 날 : 로마 출발, 시비타 디 반뇨레조, 오르비에토, 피틸리아노
로마에서 픽업한 렌트카에 몸을 싣고, 첫 목적지인 시비타 디 반뇨레조(Civita di bagnoregio)로 향합니다. 로마에서 1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마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분지 한 가운에 우뚝 선 바위산 위에 성의 모습을 대면하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가 받았던 영감을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2,500여 년 전에 지어진 시비타 성과 반뇨레조 마을을 잇는 다리는 1965년에 건설된 비교적 신문물입니다.
누군가에겐 천공의 성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유럽인들에게 “죽음으로 가는 마을(il paese che muore)”로 불리고 있습니다. 중세 전성기에는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진 시비타 성의 현 거주민은 14명(2022년 자료 기준)에 불과한데요, 현재진행형인 풍화작용으로 인해 마을이 점차 붕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비에토(Orvieto)
이어서 20여 킬로미터를 달려 시비타보다 더 큰 규모로 응회암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 오르비에토로 이동합니다. 이 지역 토착 민족이었던 에르투리아인들이 로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위산 꼭대기에 건설한 요새도시가 오르비에토와 시비타의 원형입니다.
오르비에토는 에르투리아인들이 만든 지하동굴 도시와 함께 아름다운 파사드(Façade)로 유명한 두오모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 유적을 모두 품고 있는 도시로, 현대 슬로시티의 시발점이 된 슬로푸드 운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수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르비에토 성안에서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현지인들에게 슬로 라이프란 필연적인 삶의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구 시가지 위에 우뚝 솟아 오르비에토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는 두오모 대성당입니다. 화려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정면의 파사드는 성서의 내용을 정밀하게 묘사한 부조와 모자이크화가 가득해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다음은 고대 유적인 오르비에토의 지하 동굴 도시입니다. 이 동굴은 고대 에르투리아인들이 물을 공급하기 위해 팠던 우물들이 여러 문명을 거치면서 동굴 터널로 발전해 1,200개 이상의 터널, 계단, 채석장, 저장고 및 비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도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요새화 덕분에 중세시대 교황의 피난처로도 사용됐다고 합니다.
오르비에토는 그 자체로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 도시의 매력을 간직한 곳입니다. 이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좁은 골목길과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현대의 분주함에서 벗어난 여유를 선사합니다.
피틸리아노(Pitigliano), 이탈리아 여행의 낭만
이제 첫날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중세 마을 피틸리아노로 이동합니다. 피틸리아노의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즐기고, 고요한 밤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세요. 한 가지 팁을 드리면, 해외 관광객들에겐 낯설지만 이탈리아인들에겐 이미 인기 있는 이 곳은, 저녁 7시에 오픈하는 식당들 대부분 예약이 꽉 차 있으니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두번째 날 : 사투르니아 온천, 아미아타산, 피엔차, 아그리투리스모
마치 밤새 중세 시대로 긴 시간 여행을 하고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두번째 날의 아침, 첫 목적지인 사트루니아(Saturnia) 온천으로 향합니다. 사트루니아로 가는 길목에 피틸리아노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뷰포인트가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피틸리아노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토스카나 동쪽에 위치한 사투르니아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온천입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유황 온천수는 고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쏟아지며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미아타산(Mount Amiata), 이탈리아 여행 중 새로운 경험
이제 사투르니아 온천의 수원지인 아미아타산을 넘어 발도르차 평원을 향해 갑니다. 2D인 구글 지도에서 보여지는 직선 거리만 보고 정한 루트라서 이렇게 산을 넘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지만, 그 결정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오가는 차도 인적도 드문 아미아타산의 2차선 도로를 전세 내고 유유히 드라이브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만나는 환상적인 고원의 경치는 덤입니다.
숲길이 끝나면 만나게 되는 여러 중세 마을들을 거쳐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번 토스카나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발도르차(Val d’Orcia) 평원의 꿈같은 모습이 펼쳐집니다.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던 발도르차 평원의 장관을 공유합니다.
피엔차(Pienza),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나는 동화 속 마을
해가 비치는 방향에 따라 구름이 지나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발도르차 평원의 풍광에 감탄하며 한가로이 달리다 보면 또 하나의 중세 도시, 피엔차를 만나게 됩니다.
이제 토스카나 농촌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 숙소로 향합니다. 현지 농장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이탈리아 정통 가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즐기고, 맑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벌써부터 아쉬운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아그리투리스모의 숙박 경험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이탈리아 아그리투리스모 숙박 후기 : 인생 숙소 등극
세번째 날 : 시에나, 산 지미냐노, 피렌체 도착
이탈리아 여행 중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발도르차 평원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눈을 뜹니다. 숙소 주변에 위치한 유명 포토스팟을 거쳐 중세 도시의 흥망성쇠 스토리를 간직한 시에나(Siena)로 향합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보석, 시에나는 중세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고 담고 있는 도시입니다. 시에나는 한 때 피렌체와 경쟁할 정도로 융성했지만 14세기 흑사병 피해 등으로 그 번영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성장이 멈춰버린 시에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중세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역사적 도시로 남아 많은 여행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시에나, 캄포 광장
가장 먼저 시에나 여행의 시작과 끝, 캄포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부채꼴 모양의 광장이 펼쳐진 이곳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푸블리코 궁전과 흰색 왕관을 쓴 듯한 만지아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광장은 부챗살을 그려놓은 것처럼 9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광장이 건설된 12세기 당시 이 지역 유지였던 9개 가문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 시대 대성당만큼이나 웅장한 규모로 일반 시민이 모일 광장을 만들고, 9개 가문이 동등하게 합의하는 정치 체제를 갖췄던 당시 시에나의 문화가 놀랍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 17개 자치구인 콘트라다(Contrada)로 나뉜 시에나의 행정 체계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시에나 곳곳에서 콘트라다를 상징하는 깃발과 동물 조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에나, 두오모 대성당
성장이 멈춰버린 시에나의 흔적은 시에나 대성당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대성당도 중세 건축의 완전체로 평가받을만큼 훌륭하지만, 원래의 설계는 피렌체보다 더 웅장한 대성당을 지으려했었다고 합니다. 재정 악화로 건축이 중단돼 원래 본당으로 계획됐던 부분은 벽채만 남았고, 회랑으로 설계됐던 건물이 본당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시에나가 과거의 명성을 지속했다면 성당 건축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이탈리아 여행 중 중세 소도시 투어의 하이라이트
다음으로 이탈리아 여행 중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세의 맨하튼”으로 불리는 산 지미냐노로 이동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본 소도시들의 전경 사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바로 거의 모든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던 종탑들입니다. 하늘에 닿고자 했던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의 끝판왕인 탑은, 당시 성 바깥에 살던 사람들이 멀리에서도 종탑을 보고 성당에 찾아올 수 있도록 높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산 지미냐노에는 중세 전성기 때 70개에 비해서는 적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14개의 탑들이 남아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산 지미냐노를 뒤고 하고 피렌체로 향하며 2박 3일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이탈리아 여행 중 토스카나 지역을 자동차 여행하며 제가 느꼈던 설렘과 감동이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이 여러분의 미래 여행 계획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